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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로마서 3장 논쟁(Romans 3 Debate), 무엇이 문제일까? — 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 πίστις Χριστοῦ, 그리고 New Perspective를 정경·서사적으로 다시 읽기

by sunsethouse 2026. 1. 15.

로마서 3장, 특히 3:21–26은 바울 신학의 중심부로 자주 불립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본문은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만큼 가장 자주 축소되어 읽혀 왔습니다. “칭의”를 말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칭의를 본문 한 장면에 가둔 채 읽기 시작할 때 논쟁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습니다.

로마서 3장을 둘러싼 현대 논쟁은 대체로 세 가지 축으로 모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 세 논쟁이 서로 얽히면서도 대개 각각 다른 전선에서 따로 진행되어 왔다는 데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꼬임”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간단히 정리하고, 정경·서사적 리터러시(canonical–narrative literacy)라는 상위 프레임 안에서 세 논쟁의 자리와 초점을 다시 잡아 보려는 시도입니다.

 

1) 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 논쟁: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로마서 3장 해석의 핵심 쟁점입니다.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은 갈래가 형성되어 왔습니다.

  •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볼 것인가
  • 죄인에게 전가되는 법정적 의로 볼 것인가
  •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라는 언약적 의/신실성으로 볼 것인가

이 논쟁은 단지 단어 정의 싸움이 아니라, 로마서 3:21–26이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목적하는가”라는 큰 방향을 결정합니다.

 

2) πίστις(πίστις Χριστοῦ) 논쟁: “믿음”은 누구의 무엇인가?

두 번째 축은 πίστις Χριστοῦ를 어떻게 읽느냐의 문제입니다.

  •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으로 번역할 것인가
  • “끝까지 신실하신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읽을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논쟁이 종종 “A냐 B냐”의 선택으로만 흘러가지만, 실제로 바울의 문맥은 그리스도의 신실함이 열어 놓은 길 안으로 신자의 믿음이 들어가는 구조를 더 자주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믿음은 단지 머리의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열어 놓으신 의의 질서 안으로 실제로 “옮겨 서는” 사건으로 읽힐 여지가 큽니다.

 

3) New Perspective 논쟁: “율법의 행위”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세 번째는 ‘새 관점’ 논쟁입니다. 특히 “율법의 행위”가 무엇을 뜻하느냐가 핵심입니다.

  • 단순히 도덕적 선행/공로를 말하는가
  • 아니면 유대인들의 언약 표지와 경계표(할례, 절기, 음식법 등)를 가리키는가
  • 더 나아가 제2성전기 유대교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이 논쟁은 로마서 3장의 “배경 이야기”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이 세 논쟁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도, 대개는 각각의 단어/학파/슬로건을 중심으로 따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로마서 3:21–26은 종종,

  • 개별 구절의 문법 싸움,
  • 특정 학파의 표어 경쟁,
  • 혹은 단일 교리의 공식

으로 축소되어 읽히곤 했습니다.

 

정경·서사적 리터러시: 논쟁을 다시 배열하는 상위 프레임

최근 KCI 등재 학술지에 실린 논문
「신학적 리터러시로 읽는 로마서 3:21–26」은
이 세 논쟁을 하나의 상위 프레임, 곧 정경·서사적 리터러시(canonical–narrative literacy) 안에서 함께 다시 읽어 보려는 시도입니다.

 

요지는 간단합니다.

로마서 3:21–26을
창세기–율법–예언서–복음서–바울 서신으로 이어지는 정경 전체의 이야기와 모티프 안에서 다시 읽자는 것입니다.

특히 로마서 3:21–26은 본문 스스로를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언을 받아 온 의”(μαρτυρουμένη)로 규정하며, 독자를 정경적 세계로 초대합니다. 이때 본문이 환기하는 대표적 모티프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하박국: “기다리라”고 약속된 의(특히 2:4)의 지평
  • 출애굽/해방: “구속/속량”(ἀπολύτρωσις)이 불러오는 해방–언약의 패턴
  • 성소/성전(속죄소):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이 여는 피–속죄–임재의 회복
  • 그리고 그리스도 사건 이후 새 공동체/처소로 지어져 감(엡 2:19–22)

이 프레임에서 세 논쟁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렇게 읽기 시작하면,

  • 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는 단순한 “개인 구원 공식”을 넘어, 언약 질서와 새 창조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의로 자리 잡게 되고,
  • πίστις Χριστοῦ 논쟁 역시 “그리스도의 신실함 vs 신자의 믿음”을 넘어, 그 신실함이 열어 놓은 의의 질서 안으로 신자의 믿음이 어떻게 들어가는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재배열되며,
  • New Perspective 논쟁도 “율법의 행위”가 어떤 이야기(언약·표지·공동체·성전 모티프)를 배경으로 등장하는지에 따라 쟁점 지형이 더 투명해집니다.

이 접근은 “누가 완전히 맞고 누가 완전히 틀렸다”를 판정하기보다, 정경·서사적 프레임 안에서 논쟁의 자리와 초점을 다시 잡는 일에 더 관심을 둡니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는 상당 부분 정리되고, 남는 쟁점들도 더 선명한 지형 위에서 토론할 수 있게 됩니다.

 

논문 전문(doi)

아래 DOI 링크에서 논문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doi.org/10.23291/jcp.2025..44.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