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21–26을 오직 법정적 선언으로만 읽을 때, 해석은 한 지점에서 멈춘다.
죄인은 의롭다 하심을 받고, 판결은 내려지며,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독법은 바울이 열어 두고 있는 다음 장면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다.
바울에게서 “의롭다 하심”은 종착점이 아니라 입구 선언이다.
그 선언은 죄인을 법정에서 풀어 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를 어디로 옮겨 놓는가,
어떤 질서 아래 살게 하는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로마서 3장을 법정적 선언으로만 축소해 읽는 순간,
하나님의 의는 ‘판결의 언어’로만 남고,
그 판결이 향하고 있는 처소의 지평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 결과 “의롭다 하심”은 개인의 신분 문제를 해결하는 공식으로 고정되고,
하나님이 그 의를 통해 어떤 공동체를 세우고, 어떤 임재의 질서를 회복하려 하시는지는 충분히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로마서 3:21–26은 스스로를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언을 받아 온 의”라고 규정하며,
독자를 출애굽의 해방, 속죄소(힐라스테리온),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거하시려는 자리라는
정경적 서사 세계 안으로 초대한다.
이때 “의롭다 하심”은 단지 죄책을 제거하는 선언이 아니라,
죄인을 그늘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자리로 옮기는 선언이다.
이 흐름을 놓치지 않을 때,
로마서 3장은 로마서 8장의 “생명의 성령의 법”,
로마서 11장의 “접붙임”,
그리고 에베소서 2장의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법정적 선언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선언은 언제나 처소를 향해 열려 있는 문으로 읽혀야 한다.
결국 문제는 이것이다.
로마서 3장을 어디까지 읽을 것인가.
판결에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그 판결이 열어 놓은 **처소로 들어갈 것인가.
로마서 3장을 법정적 선언으로만 읽을 때,
우리는 그 문 앞에 서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바울이 의도한 독해는,
그 문을 통과해 하나님이 거하실 자리로 들어가도록
독자를 이끄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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