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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적 선언으로만 읽힌 로마서 3장은, 처소로 향하는 길을 잃는다— Romans 3:21–26, 칭의 선언과 처소 건축의 간극 로마서 3:21–26을 오직 법정적 선언으로만 읽을 때, 해석은 한 지점에서 멈춘다.죄인은 의롭다 하심을 받고, 판결은 내려지며,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 독법은 바울이 열어 두고 있는 다음 장면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다.바울에게서 “의롭다 하심”은 종착점이 아니라 입구 선언이다.그 선언은 죄인을 법정에서 풀어 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그를 어디로 옮겨 놓는가,어떤 질서 아래 살게 하는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로마서 3장을 법정적 선언으로만 축소해 읽는 순간,하나님의 의는 ‘판결의 언어’로만 남고,그 판결이 향하고 있는 처소의 지평은 시야에서 사라진다.그 결과 “의롭다 하심”은 개인의 신분 문제를 해결하는 공식으로 고정되고,하나님이 그 의를 통해 어떤 공동체를 세우고, 어떤 임재의 질.. 2026. 1. 16.
로마서 3장 논쟁(Romans 3 Debate), 무엇이 문제일까? — 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 πίστις Χριστοῦ, 그리고 New Perspective를 정경·서사적으로 다시 읽기 로마서 3장, 특히 3:21–26은 바울 신학의 중심부로 자주 불립니다.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본문은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만큼 가장 자주 축소되어 읽혀 왔습니다. “칭의”를 말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칭의를 본문 한 장면에 가둔 채 읽기 시작할 때 논쟁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습니다.로마서 3장을 둘러싼 현대 논쟁은 대체로 세 가지 축으로 모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 세 논쟁이 서로 얽히면서도 대개 각각 다른 전선에서 따로 진행되어 왔다는 데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꼬임”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간단히 정리하고, 정경·서사적 리터러시(canonical–narrative literacy)라는 상위 프레임 안에서 세 논쟁의 자리와 초점을 다시 잡아 보려는 시도입니다. 1) 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 .. 2026. 1. 15.
나는 지금, 마음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나는 지금, 마음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그 그림은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삶의 모습일까? 아니면 사회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이래야 한다'는 압박으로 그려낸 모방된 형상일까? 우리는 자주 남이 그린 그림을 따라 베끼며 살아간다. 유명 인플루언서의 삶, 누군가의 성공담, 미디어가 보여주는 이상적인 장면들. 그것들이 너무 선명하고 화려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 이미지를 마음에 옮겨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막상 현실 속에서 살아내려 할 때 색이 바래고 선이 어긋난다. 헐렁한 옷처럼, 누구의 눈에도 분명히 나와 맞지 않는 어색한 구석들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내면에서 자라난 그림이 아니라, 남이 대신 그려준 ‘포장된 삶’이기 때문이다. 진짜 그림은 밖에서 보이는 이미지.. 2025. 6. 5.
마음의 그릇에 무엇을 담고 사는가 사람은 그릇과 같다.그 그릇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진다.보석을 담고 있다면 보석함이 되고,쓰레기를 담고 있다면 쓰레기통이 될 뿐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살아가는가에 따라,그 삶의 향기와 무게가 결정된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잊는다.내 마음의 그릇이 지금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지를.권력, 물질, 성취—겉보기엔 멋져 보이지만, 때로는 그것들이 인간을 부패시키고타락의 길로 이끄는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자연은 조용히 우리에게 묻는다.“너는 지금 무엇을 담고 있는가?”아침 햇살 아래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고요히 흐르는 강물 속에서우리는 말없이 전해지는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느낀다. 이런 소소한 자연의 이치 속에서우리.. 2025. 6. 2.
발걸음을 멈추어 통찰 없이 달리는 삶을 돌아보다 우리는 매일같이 분주하게 살아간다. 출근길, 일터, 일과 후의 약속까지—하루를 쉼 없이 달린다.그런 일상의 어느 날,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바라본 땅 위에 개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좁은 통로를 따라 줄을 지어, 일사불란하게 무언가를 나르고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우리 삶의 축소판 같았다. 큰 몸집과 강한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 번의 번식 기간 동안 수많은 알을 낳아 번식을 담당하며, 알을 낳아 군집의 유지를 책임지는 여왕개미,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이라는 이름과 닮아 있다. 식량을 찾거나, 둥지까지 운반하는 역할을 맡으며, 둥지 내에서 여왕이나 유충을 돌보는 일을 일개미는 가족을 먹어살리야 애쓰는 샐러리 맨들과 모습을 담고 있다.아무리 덩치 큰 먹이일지도 벌때 같이 달려들어 한 순간에.. 2025. 6. 2.
소소한 것에서 깨닫는 자연의 이치 우리는 종종 거대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웅장한 산, 광활한 바다, 장엄한 석양. 눈을 사로잡는 것들에 우리는 감탄하고, 그 안에서 삶의 진리를 찾고자 애쓴다. 그러나 문득, 아주 작고 평범한 것들 안에서도 삶의 깊은 이치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침 산책길에서 문득 마주한 이름 모를 들꽃 하나. 누군가의 눈에는 잡초일지 모르지만, 그 꽃은 땅을 뚫고 올라와 햇살을 받아내며 제 몫의 계절을 피워내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그 모습은 마치 우리 삶의 고요한 비유처럼 느껴졌다. 거창하지 않지만, 성실하고 충실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존재. 그 모습이야말로 삶의 본질이 아닐까? 발걸음을 멈추고 이름 없는 들꽃에 눈길을 둘때 그는 내게 예.. 2025.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