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다. 생각보다 반응이 먼저고, 질문보다 답이 먼저 주어진다.
속도는 곧 유능함이고, 느림은 곧 낙오처럼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삶은 점점 더 조급해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빠르게 진도를 나가야 하고, 사회에서는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한다.
심지어 인간관계마저도 빠르게 맺고, 빠르게 끊는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짧은 시간에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 ‘능력’으로 인식되는 시대.
하지만 문득 묻게 된다.
“우리는 정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지 겉만 스치듯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속도는 분명 편리함을 주지만, 깊이를 앗아간다.
식물원을 방문해도 우리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사진 찍기에 바쁘다.
정작 그곳이 주는 고요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는 놓쳐버린다.
만남이란 본디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상의 외형만 소비한 채,
그들이 건네는 말에는 귀를 닫는다.
내 눈에 그들의 모습만 담아두고,
꽃과 나무, 풀과 공기가 속삭이는 메시지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그곳에 다녀왔다’고 말한다.
모든 만남 속에서 나는 배우는 귀와 눈, 마음을 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표면만 스치듯 지나가는 대화, 감정, 경험들.
깊이 빠져들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충실함은 어느새 ‘느림’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깊이 있는 삶은 ‘비효율’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언제나 천천히 찾아온다.
좋은 관계는 오랜 신뢰 속에서 자라고,
지혜는 깊은 사유의 시간 속에서 싹튼다.
내면의 평안 또한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시간의 토양’ 위에서 자란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갈아엎으려면
날카로운 쟁기를 깊이 눌러야 한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얕게만 갈면,
어떤 씨앗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서서히 땅을 뒤집듯,
멈춤의 자리에서 인내와 기다림을 배우고,
실수와 실패는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도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변해간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속도를 삶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성공도, 행복도, 존재의 의미조차 ‘속도’로 측정하며 살아왔다.
더 빨리, 더 앞서.
하지만 그 끝에는 종종 깊은 허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빠르게 쌓은 성취는, 마음의 공허를 메우지 못했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깨닫는다.
“속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깊이가 필요하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간은 정해진 본질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실존을 통해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다.
그렇기에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깊이’다.
깊이는 기다림 속에서 자란다.
한 자리에 머무는 시간이 흔적을 남기듯,
깊은 사색은 삶에 조용한 자취를 남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왜 사는지를 묻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타인의 마음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법을 배운다.
나는 이제, 속도를 조금 늦추려 한다.
눈에 띄는 삶보다 마음에 남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깊이 있는 하루가 쌓여, 깊이 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속도는 지나가지만, 깊이는 남는다.
기억에 남는 인생보다, 마음에 남는 하루를 쌓아가는 일.
그것이 어쩌면, 진짜 의미 있는 삶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