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등만 기억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스포츠 중계에서, 입시 결과에서, 회사의 성과 발표에서
항상 사람들은 최상위에 선 사람만 주목한다.
2등은 물론이고, 그 뒤를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노력은
쉽게 잊혀진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도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눈에 띄어야 의미가 있고,
성과를 내야 존재가 증명된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삶은
‘비교’라는 잣대 위에서만 평가되고 있었다.
잘하고 있다기보다,
남들보다 잘하고 있는지를 먼저 따졌다.
내가 진심을 다했는지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했다.
순위표에서 조금만 밀려나도
존재감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고,
어디에 있든 ‘1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높은 산이 높아 보이는 건, 낮은 산이 있기 때문 아닌가?
이름 있는 산이 돋보이는 이유는,
이름 없는 산들이 묵묵히 그 곁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흔들바위 하나가 신기한 것도
그 옆에 수많은 흔들리지 않는 바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화일까, 균형일까, 아름다움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환호하는 ‘1등’이라는 자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두가 추앙하는 그 자리가 빛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박수치는 그 자리는, 사실 ‘서 있는 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눈’이 만든 무대는 아닐까?
1등의 자리에 선 사람은
과연 그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이들을 생각할까?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그 자리가 지닌 사회적 책임을 느낄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우월함만을 확인할까?
우리가 접하는 뉴스와 미디어는
후자에 가까운 장면들을 더 많이 보여준다.
그러나 1등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는 조용히, 그러나 깊게
자기 삶을 살아낸다.
남의 박수를 기대하지 않고,
속도보다는 의미를 따라 걷는다.
그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마음은 묵직한 울림으로 남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아름다움 아닐까?
문득 나는 자문했다.
우리는 왜 ‘기억되는 것’에만 집착할까?
정말 기억에 남는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일까?
정작 우리가 가장 감동받는 순간은,
어디선가 소리 없이 누군가가 내민 손길,
한 마디 말, 따뜻한 시선 같은
기억되지 않지만 ‘깊이 남는’ 순간이 아니던가?
세상은 성과와 숫자에 열광한다.
그래서 실패는 곧 잊혀짐이고,
2등은 곧 침묵이다.
하지만 인생은 경기장이 아니다.
우리 삶의 진짜 승부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진실한 마주함 속에 있다.
나는 이제 조금씩 속도를 늦추려 한다.
눈에 띄지 않아도 괜찮다고,
기억되지 않아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가려 한다.
‘유명한 삶’보다 ‘충실한 삶’을,
‘보이는 성취’보다 ‘보이지 않는 성숙’을
조금 더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사람들은 여전히 1등만 말하겠지만,
나는 그 줄 뒤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나의 길을 걷고 싶다.
누군가의 기억에는 남지 않더라도,
내 마음에 남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