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리지 않는 인생의 경고 –
인생의 마지막에 가장 많이 남는 감정은 ‘후회’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후회를 목격하고도,
그 길을 또다시 걸어가는가?
학창 시절, 우리는 이유 없이 앞을 향해 달렸다.
누군가 “왜 그 길을 가느냐”고 묻지도 않았고,
나 역시 그런 질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이렇게 사는 거겠지”라는 익숙한 믿음 속에서
목표만을 좇았다.
그리고 어느새 세월이 흐르고,
그렇게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속도는 있었지만 방향은 없었던 시간들.
결국 그 끝에서 마주한 것은 깊은 공허감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후회였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건,
그 후회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누군가는 조용히 말한다.
“나는 진짜 중요한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어.”
“그렇게 살지 마. 너는 달라야 해.”
하지만 이 조언은 다음 세대에게 닿지 않는다.
왜 그럴까? 성공하지 못한 자의 회고는 하찮은 핑계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공한 자의 목소리―
“나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그 목소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생의 참된 목표가 무엇인지 성찰 없이 이룬 성공자의 말이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더 보암직하고, 아름답고, 탐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바쁘게 사는 청춘은 그런 말을 들을 시간도,
그 의미를 새길 여유도 없다.
결국 인생은, 후회를 반복하는 구조를 품은 여정이 된다.
새로운 젊은이들은 다시 목표를 세운다.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멀리.
그 목표에는 의미보다 성취가 앞서고,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인생이 무엇인지 묻기엔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어른들은 말한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하지만 젊은이들은 듣지 않는다.
그 말은 마치 ‘늙은 자의 후회’일 뿐,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 말은 그렇게 사라지고,
또 하나의 후회가 자라난다.
인간은 어쩌면,
자신이 직접 겪기 전에는 절대 배우지 못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눈앞의 현실이 너무 선명한 나머지,
앞선 세대의 그림자는 너무 흐릿하게만 느껴진다.
인간은 타인의 말을 듣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해보고 경험하며 체득하고,
결국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존재다.
우리 안에 잠재된,
‘보이는 것’에 대한 욕망이 자꾸만 충동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결국 인생이 되묻고 돌아봐야 할 본질—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를 놓치게 만든다.
모두가 성찰 없이 달려가게 만드는 이 구조,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조용히 소리 없이 흐르는 시냇물보다,
웅장한 물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더 좋아하는
우리의 본성은
잔잔히 인생의 의미를 통찰하는 일을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 버린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이 패턴은 과연 멈출 수 없는 것일까?
누군가는 이 흐름을 끊어낼 수는 없을까?
아마도 방법은 ‘통찰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통찰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듣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삶의 무게로 증명된 진심은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삶의 흔적으로 남는다.
나는 이제, 내 삶에 더 많은 사유의 자리를 남기려 한다.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묻고,
후회 없는 하루를 쌓아 나가는 삶.
그것이 내가 이 후회의 사슬을 끊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첫걸음이 아닐까.